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니 뱅크스 (문단 편집) == 평가 == 그리고 시카고 컵스는 그가 활약하는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 했으며 어니 뱅크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로 남아있다. 참고로 두 번째로 오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는 같은 시카고 구단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 [[루크 애플링]].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생활 때부터 은퇴 이후까지도 계속 시즌이 시작할 때는 올해는 시카고 컵스가 우승할 듯이라는 말을 하며 컵스 팬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대다수의 컵스 팬들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컵스가 우승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지만. 그는 인종차별의 시대를 관통한 선수였다. 흑백차별이 여전히 뜨거운 불씨로 남아있는 동안, 뱅크스는 빈볼과 반칙을 묵묵히 이겨내야 했다.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그에게 말하기보다는 듣고 인내하기를 요구하였으며, 그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또한 뱅크스는 로빈슨의 조언을 뛰어 넘어 온갖 시비에 대하여 항상 웃는 쾌활한 태도로 인종의 벽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메이저리그가 사랑하는 미스터 선샤인이 되었다. [* [[2016년 월드 시리즈]]에서 컵스의 1번타자로 출장한 [[덱스터 파울러]]가 컵스 최초로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은 흑인 선수가 되었다.] 타격에 있어서 그는 삼진도 적고 볼넷도 적은 전형적인 올드스쿨 타자로, 볼넷을 지양하고 적극적인 타격을 신봉하는 타자였다. OPS로 보면 낮은 출루율을 높은 장타율로 생산성을 커버하는 타자. 그러나 그 파워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것이 오늘날도 뱅크스가 훌륭한 타자로 평가받는 주요 요인이다. 이전까지는 무거운 배트[* [[베이브 루스]]는 1.2kg짜리 방망이를 사용했고 이후 배트의 무게는 그 전후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다만 베이브 루스의 방망이도 그 당시 기준으로는 가벼운 축에 속했었다.]가 대세였으나 [[행크 애런]]과 함께 빼어난 손목 힘을 활용할 수 있는 가벼운 배트를 사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뱅크스가 은퇴하기 전에는 500홈런 타자가 8명밖에 없었던 것만 봐도 그의 타격에 대해 이론이 나올 수 없게 한다. 뱅크스의 시대에 내셔널리그의 유격수의 평균 홈런 갯수는 고작 10개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소인국에 나타난 걸리버 수준. 다만 1루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면서 뱅크스를 유격수로 봐야할 지, 1루수로 봐야할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상황. 대체적으로 1루수보다는 유격수로써 더 많은 활약을 했고, 1루수로 뛴 경기와 유격수로 뛴 경기 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업적을 쌓은 유격수로 더 많이 보는 듯. 유격수로써는 수비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국 전쟁 참전 이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갖고 있었으며, 덕분에 좌우 수비 범위가 좁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수비를 향상시켜 골드 글러브를 받는데 성공하지만, 지나친 훈련으로 인해 무릎 부상이 악화되었고, 이는 그의 포지션 변경의 원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뱅크스는 1루수로써는 넓은 수비 범위, 훌륭한 어깨로 인해 최고의 1루 수비 중 하나로 손꼽혔다. 다만 당시 내셔널 리그에는 빌 화이트[* 6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1루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선수 은퇴 이후 내셔널리그 회장이라는 고위직에 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라는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1루수가 있었기 때문에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지는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